피노키오의 눈물 3
피노키오의 눈물 3
핸드폰을 봤다.
하지만 둘이 기대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단영아 잠시만...”
그리고 기적은 차에서 내려 전화를 받았다.
차 안이라 기적이 말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지만... 살짝 살짝 들리는 것을 봐서는 회사인 듯 했다.
기적이 출근시간이 지났음에도 회사에 오질 않자 휘하 직원이 기적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기적은 오늘 병원에 들렀다가 가서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시간이 더 지체 되자 전화가 왔다.
"단영아...“
기적이 전화를 끄고 차에 다시 탔다.
단영은 기적의 얼굴을 빤히 봤는데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필히 회사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기적의 직급은 부장이다.
회사 임원급은 아니지만 실무에서는 최고봉에 속한다.
기적의 회사는 중소기업이지만 나름 탄탄한 곳이기도 하고 또 기적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 이렇게 자리를 비우자 기적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다.
“미안해... 단영아... 내일 가면 안될까?”
단영은 도리질 쳤다.
기적이 회사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기적이 가지 못할 것이라 짐작은 했다.
수란이 입원하기 전에도 원체 바빴지 않았던가... 기적이 가지 못한다면 단영은 혼자라도 갈 생각이었다.
“싫어... 나 혼자라도 갈 거야...”
“끄응... 어떻게 가려고... 차도 없으면서...“
“버스타고 갈 거야... 근처에 가서 택시 타면 돼...”
“그럼 수란이는 어떻게 해... 혼자 둘 거야?“
“요즘 수란이 병실 친구들 많이 생겼어... 낮에는 나 많이 찾지도 않아...“
“그래도...수란이 무슨 일 생기면...”
“그러니까 빨리 가야지...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빨리...“
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뒷 이야기는 너무나도 불길한 수란의 죽음.. 그것을 언급해 부정탈까 입에도 올리기 싫었다.
“알았어...”
무슨 말을 해도 단영이 들을 것 같지 않자 기적은 설득을 포기했다.
“단영아... 정 가야겠다면... 차 끌고 가...“
그러면서 기적은 단영에게 차키를 건넸다.
“마음 같아선... 나도 일 다 제껴두고... 같이 가주고 싶은데... 내가 가버리면... 우리 수란이 병원비는 어떻게 해... 우리 수란이 나을 때 까지는... 때려치고 싶어도... 참아야지....“
“...미안해... 오빠... 오빠도 힘든데...”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정작 필요할 때는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서 울었다.
곡소리를 내는 통곡은 아니지만... 상황을 이해하며... 위로하는.. 숨을 죽이고 억지로 참는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나오는 울음...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함참을 숨죽여 울다가 떨어졌다.
“그만 가볼게...”
“응...”
떨어져서 눈을 매만졌다.
울었다 그쳤다를 반복해서 그런지 눈은 촉촉하고 빨갰다.
기적이 차에서 내렸다.
“조심히 가고... 어떻게 됬는지 전화나 문자 꼭 줘...“
“알았어...”
짧게 인사를 마치고 기적은 훌쩍 주차장을 떠났다.
마음은 단영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회사일이 더 급했다.
회사는 지금 사활을 걸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자가 바로 기적이다.
이 일을 망치면 수란이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수술비를 대기 힘들 것이다.
기적은 차에 타 있는 단영의 모습이 계속 밟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단영은 네비게이션에 공여자의 주소를 쳤다.
네비게이션에 전체지도가 뜨면서 위치가 표시되었다.
경기도와 강원도 사이에 있는 곳... 고속도를 타고 대략 1시간 정도의 거리.
안내를 시작하겠냐는 멘트에 단영은 시작버튼을 꾹 눌렀다.
부르릉
단영이 운전하는 차는 부드럽게 서울을 빠져나갔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차는 제법 속도가 붙었다.
평소라면 겁이 많은 단영이 안전운전을 하겠지만... 제 아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난히 오늘 차가 느린 것 같았다.
속도계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미친 듯이 엑셀을 밟았다.
옆에 차들이 휙휙 지나갔지만 그래도 단영은 초조했다.
기적이 봤으면 사고라도 날까봐 단영을 제지했겠지만... 지금은 기적도 없다.
단영은 과속을 하는 지도 모른채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중간 중간 번쩍거리는 단속카메라만이 진실을 알았다.
나중에라도 단영은 고지서로 알게될 것이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목적지 근처에 도달하자 네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했다.
예상시간으로 한시간 조금 넘게 측정되었으나 실제로는 40분대로 끊은 것 같다.
적합자가 살고 있는 곳은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단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골 마을도 아니었다.
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넓은 호수를 끼고 있는 별장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넓은 정원과 호수 그리고 별장... 나중에 수란이 낫고 다 커서 시집을 보내고... 기적과 이런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 특히 한국의 호수 답지 않게 맑고 투명했다.
보통은 짖은 녹색빛이 대부분인데 이 호수는 주변이 뻥 뚤려서 그런지 푸르른 하늘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파랗고 투명했다.
이 호수 때문에 더 이국적인 매력을 가진 것이다.
“여긴데...”
단영은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시동은 끄지 않았다.
별장은 멀리 있었으나 차로는 갈 수 없었다.
굳게 닫힌 철제 바리게이트와 앞에 적힌 경고문구. 사유지임으로 더 이상 갈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단영은 한참은 둘러보다가 바리게이트 옆에 버튼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꾸욱
망설임 없이 눌렀다.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알리는 초인종인가?
단영이 두어번 눌러도 스피커로 보이는 판에서는 반응이 없다.
“어쩌지...”
기적이 무작정 찾아 가봤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른다고 했다.
단영도 기적의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그저 아픈 아이를 가진 어미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뿐...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혹시 적합자가 안에서 그냥 없는 척을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르륵
살며시 바리게이트를 밀어보자 부드럽게 밀렸다.
잠겨있지 않았다.
단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바리게이트를 바로 밀어버렸다.
멀리 보이는 별장으로 가볼 생각이다.
분명 지금 단영이 하고 있는 행위는 가택침입이지만... 엄연한 불법이고 단영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정도로 단영은 우유부단하지 않다.
아니 다른 여자와 별다르지 않지만 자신의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그렇듯 자신을 희생할 각오쯤은 할 수 있는 여자였다.
다시 단영의 차가 출발했다.
멀리 작게 보였던 별장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저 큰 집이라 생각했던 별장이지만.. 생각보다 더 컸다.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3층집으로 보였다.
더 가까이 가보니 휜색 세단도 보였다.
정말 단영의 생각대로 집주인은 집에 나가지 않고 없는 척을 한 것인가?
단영은 바로 그 세단 옆에 차를 댔다.
그리고 백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별장을 한번 훝어 보고는 바로 대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5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조용하다.
띵동 띵동
계속해서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찾아 왔으면 조금이라도 시끄러워질 법하지만...
너무나도 조용했다.
정말 사람이 없나?
철컥
혹시나 싶어서 문고리를 잡아서 돌렸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손잡이.
그리고 무겁게 열리는 철문.
"어쩌지...“
아까 바리게이트도 그렇고 이 대문도 그렇고... 사람이 없는 것 치고는 전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냥 집주인이 부주의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잠기지 않는 것인지... 단영은 망설이다가 입술을 꾹 다물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굳건한 철문이 쿵 하고 닫혔다.
“여보세요... 아무도 안계세요?“
그냥 무작정 들어왔지만... 아무런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면 도둑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문지방을 넘어가지 않고 현관에서 조심스레 인기척을 냈다.
집 안은 불은 하나도 켜져 있지 않지만... 벽 한쪽을 차지 하는 유리창 너머로 햇빛이 들어와 조광이 환했다.
“아무도 안계세요?”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인기척을 내면서 단영은 집으로 들어왔다.
구두를 벗어서 현관 한켠에 두고는 그대로 집으로 들어섰다.
“아...”
단영은 별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들어가자 인테리어에 깜짝 놀랐다.
“예쁘다....”
약간은 고풍스러운 엔틱가구에 멋드러진 명화까지... 거기에 햇살이 바로 더해지는 조광까지... 인테리어가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말없이 가구를 매만졌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안목과 배치에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 돈만 있다면 자신도 이렇게 꾸며놓고 살고 싶었다.
“흐음...”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살며시 닫혀있던 창을 열고 숨을 들이 마셨다.
도시가 아니라 공기도 깨끗했다.
다시 창을 닫고 둘러보았다.
부엌도 그렇고 옷방으로 보이는 곳도 마음에 들었다.
옷방엔 남자 옷 밖에 없었는데
남자 혼자 사는 곳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층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섰다.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었으나 어두워 보여 약간 무서웠다.
2층엔 전부가 침실이었다.
2층은 1층처럼 햇살이 바로 들어오진 않았다.
같은 쪽 벽이 전부 큰 창으로 되어 있었다.
창 전체가를 가리는 부드러운 실크재질의 커튼이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 좋은날 가볍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테라스에
멋있는 원목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촤아악
2층은 약간 어두워 커튼을 쳤다.
그러자 햇살이 들어오며 방이 밝아졌다.
“혼자 사나...”
옷방에서 짐작했지만...
이 귀족풍의 저택엔 남자 혼자 사는 것 같다.
단영은 침대에 앉아 젖혀진 침대보를 매만졌다.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다.
기적의 스킨냄새였나?
아니다. 기적의 스킨 냄새는 아니다.
훨씬 전에... 이전에 누군가 기억날 듯 말 듯한 그런... 아련한 기억.
다시 침대에 일어나 둘러보았다.
2층엔 방이 2개 있었는데
하나는 욕실이었다.
보통 아파트 욕실의 배가 되는 크기...
풀도 여러개 있고 샤워 부스도 많다.
거기에 한쪽에 마련된 사우나 시설까지...
이쯤되면 욕실이 아니라 목욕탕이다.
반대편 방은 서재로 보였다.
들어가자 마자 책냄새가 났다.
캄캄한 어둠 너머로 빼곡이 보이는 책장과 책들...
그리고 책상과 의자...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기에 단영은 손을 더듬어 불을 켰다.
“아...”
나중에 기적의 서재도 이렇게 꾸며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의 집도 대출로 구하긴 했지만...
정말 나중에 둘 모두 나이가 들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할 때 이런 집을... 기적에게 이런 서재를 꾸며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책상위에는 살짝 펼쳐진 두꺼운 책과
그 옆에 다이어리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필기도구가 담겨진 원목 통까지...
그러다가 단영의 시선이 옆에 쭉 나열된 작은 액자가 있었다.
“혹시...”
적합자가 누군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호기심에 단영은 액자를 들어올렸다.
“아!!”
아름다운 인테리어에 감탄하는 것이 아닌...
정말 놀라 까무러 칠 것 같았다.
그 액자를 들여다 본 순간...
단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사진 속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잘알고 있는 사람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이 말이다.
“설마...”
단영은 액자를 내려두고 그 옆에 액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 액자엔 힘없이 미소를 띈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단영이 너무나도 잘 아는 여자아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단영이 놀란 사이 누군가 다가왔다.
그것도 모른 채 단영은 사진 속으로 푹 빠졌다.
인기척을 못느끼고 있다가 존재감을 알리는 그 노크에 화들짝 놀랐다.
“당...신....”
단영은 재빨리 뒤돌아 섰다.
액자는 살며시 책상위에 놓았다.
액자들이 원래와 다르게 어지럽게 흐트러졌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게 아니었다.
단영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
“오랜만... 이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안경을 써서 더욱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
단영이 알고 있던 그 사람보다 조금 날씬하고 탄탄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 눈을... 저 표정을 잊을 수 있으리...
남자는 슬며시 단영에게 다가왔다.
단영은 남자가 다가오자 움질하다가 옆으로 슬며시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단영이 서 있던 곳으로 와서
단영이 만진 액자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사진을 매만지졌다.
아련한 남자의 표정...
그 남자의 표정에서 단영은 슬픔과 미안함을 느꼈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6
탁
그리고는 책상을 정리했다.
다시 돌아선 남자의 표정은 너무나도 싸늘하고 무표정 했다.
“무슨일이지?”
“....”
단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파르르 눈동자가 흔들리며 그 남자를 응시한다.
복잡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이 남자 앞에선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이다.
정말 남자가 힘들고 아플 때... 나몰라라 하고 떠나버렸으니까...
그래 단영의 앞에 있는 이 남자... 기적과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남자... 만나기만 했을까... 서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했던... 단영의 첫 남자이자 첫 남편...
진대한...
미련없이 버렸던 하나의 추억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푹하고 가슴에 박힌다.
진대한...
8년전...
하루가 죽고 미련없이 버렸던 전 남편...
이제는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그 남자...
다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그 남자...
대한이 예상치 못한 곳에 나타나 단영의 마음을 마구 뒤흔든다.
“오랜만이네... 언제... 한국 들어왔어..?“
침묵속에서 뭐라고 말을 꺼낼까 수없이 고민을 했지만..
고작 나오는 말이 이거다.
단영은 내뱉고 나서 뭔말을 했는지 후회했다.
“들어온지... 꽤 됐어... 3년정도 지났으니까...“
“그랬구나...”
다시 둘의 대화가 끊겼다.
사실 둘이 할 이야기도 없었다.
둘이 전에 결혼했지만...
이혼을 하고... 정확하게는 단영이 대한을 버리고...
기적과 결혼을 했다.
지금 단영의 남편은 기적이고 아이마저 있다.
수란이 아프지 않고
그냥 길가다가 대한을 만난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할 쪽은 단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수란을 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으니까.
지금 단영에게 중요한 것은...
의사가 준 쪽지에 적힌 적합자의 주소와 번호...
정확하게는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대한인지 아닌지 여부이다.
“여기서 혼자 살아?”
“...그래...”
단영으로서는 최악의 상황.
다시는 안볼 사람으로 여겨 매몰차게 버린 자신...
바짓가랑이 붙들고 매달린다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까?
자신이 알던 대한은 호인이라지만...
자신에게 그렇게 매몰차게 버림받고 부탁들 들어줄 사람은 아니다.
지금 이렇게 말이라도 꺼내면 받아주는 것도 감사할 지경이다.
“그보다 어떻게 들어왔지?”
“그냥... 문이 열려있길래...“
단영은 할말이 없어 얼버무렸다.
정확하게는 차단된 바리게이트를 치우고
잠겨있진 않았지만 주인의 허락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도 할말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 그럼 그만 가줬으면 좋겠군...”
“갑자기...”
“우리가 이렇게 얼굴 보며 이야기 할 사이는 아니잖아? 안 그래? 아... 넌 아닐 지도 모르겠군... 너에게 나나... 하루는... 아무것도 아니였으니까...“
옛날 생각을 하는 대한의 말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난 그저...“
“됐어. 네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아. 그냥 니가 바람나고 나랑 하루를 내팽겨치고 그것에 추가할 진실이 더 있나?“
“....”
단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적합자를 찾고는... 무슨 수를 써서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어서 어떻게든 수술을 하도록 만들려 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8년전 자신이 대한에게 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래 8년전... 단영과 대한은 이혼을 했다.
정확하게는 단영이 바람이 나버렸고... 가정을 내버리고 그 남자에게 가버렸다.
그 남자가 현재의 남편... 기적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대한과 단영... 둘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속도위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둘은 결혼했다.
당시 단영은 공무원에 합격했고... 대한은 교수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반적인 가정의 생계는 전부 단영의 몫.
갑작스러운 임신... 그리고 결혼... 오로지 단영의 수입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상황에서... 단영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처음 대한과의 불타는 사랑과 낙관적이고 희망찬 미래는 온데간데 없고... 자신을 짖누르는 압박과 힘겨운 상황만이 점점 단영을 지쳐가게만 했다.
이 고생을 하려고 결혼한 것이 아닌데.. 단영은 대한과 결혼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다가온 기적... 단영은 기적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기적은 단영이 원하는 남성상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결혼전...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그녀의 가치관은 180도 바뀌었다.
대한보다 더 나은 경제력과 탄탄한 근육질 몸매.. 그 남성상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당시 대한은 교수직을 준비하랴 육아에 전념하라 운동할 짬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무른 몸이 더 비대해졌다.
그런 대한의 모습에 실망하고 버린 것이 단영이다.
지금 대한의 모습은 그때와는 너무 다르다.
처음 기적의 모습을 보는 듯한 몸매다.
뚱뚱했던 그 뱃살은 온데 간데 없고 옷매무새 너머로 살짝 보이는 근육은 너무나도 탄탄해 보였다.
지금 기적이 바빠서 아저씨의 몸이 되어간 반면 대한은 나이를 거꾸로 먹은 것 같았다.
“더 할말 없지? 그럼 가봐.”
더 이상 할말 없다는 대한의 말에 단영의 상념이 깨졌다.
축객령을 내렸지만 단영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갈 순 없었다.
이대로 가면... 수란은 어쩐단 말인가?
“오빠...”
살며시 단영이 대한을 불러본다.
오빠라는 단어에 대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왜?”
오빠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
다른 여자에게 많이 들었지만... 단영에게 들은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련한 옛 추억이 향수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실... 그냥 온거 아냐... 나 오빠 만나러 왔어...“
“...”
“부탁이 있어...”
“부탁? 하! 웃기는군... 우리가 그런거 들어줄 사이었나? 시간 낭비하는군...“
대한은 들어줄 것도 없다는 듯이 돌아섰다.
그리고는 서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발... 한번만 들어줘...부탁이야...”
단영이 바로 무릎을 꿇고는 대한의 바지를 붙잡았다.
대한의 눈빛이 빛났다.
무엇이 단영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말해봐...”
“들어준다 해줘... 제발...”
단영은 대한의 다리를 부둥켜 안아버렸다.
대한이 단영을 떨치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요지부동이다.
“...들어보고 결정하지...”
“제발... 들어준다고 해줘...”
“한번만 더 징징대면 그땐 국물도 없어. 지금도 짜증날려고 하니까... 기회를 줄 때 닥치고 들어.“
“알았어...”
싸늘한 대한의 말에 단영은 흠칫하고는 떨어졌다.
섹스돌 - <부제 : 피노키오의 눈물 Part 0> 17
“아이가 많이 아파...”
“...아이라...”
대한은 주억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 아이였던... 하루처럼... 재생불량성빈혈이야...“
“...”
대한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가슴에 묻은 하루의 이름이 나와서 일까...
아니면 똑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단영의 아이가 안쓰러워서일까..
둘 다일 수도...
“...조직검사는...”
“해봤어....흑... 수술... 불가능 하대...“
단영은 두 손으로 눈을 훔치며 울었다.
수란을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흐른다.
“...아이 아빠는?”
“흑...”
아마 맞지 않겠지... 그러니 저렇게 펑펑 울어대는 것일 테고.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와 있지? 아이와 같이 있어줘도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한의 힐난에도 단영은 울면서 애처롭게 대한을 바라봤다.
무언가 부탁이 있음에도 자신의 상황만 설명하면서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음을... 눈치로 알아챘다.
저렇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면서 말못할 부탁이란게 무엇일까?
순간 대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몇 일전 자신에게 전화 온 골수 이식을 해줄 수 없겠냐는 병원의 전화... 그제야 대한은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렇군... 몇 일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었지... 그래... 그 대상자가...“
“응... 내 딸이야...”
대한은 턱을 감싸며 단영의 주변을 맴돌았다.
“제발... 제발...”
단영은 계속해서 애원했다.
이제 모든 패가 오픈된 상황에서 대한의 처분만을 기다린다.
대한이 선뜻 골수 이식을 해줄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곳에 와서 적합자가 대한이라는 걸 안 순간... 이렇게 흘러갈 것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 단영의 울음도 어찌보면 계산된 행동이었다.
최대한 불쌍한 모습을 보여 대한의 동정심을 기대하는 행동.
하지만 문제는 이런 어설픈 행동을 전부 대한이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한참을 맴돌던 대한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럼 할말은 끝났지?”
“오빠!”
“가봐 그럼.”
“제발... 오빠... 수술 해야한대... 수술안하면... 우리 수란이 죽어.. 제발... 지금도... 위험해... 의사가 그랬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사람 살린다고 치고....“
“그만! 니가 아무리 애원한다고 해도... 소용 없어...“
“제발...”
단영이 다시 대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이제 내가 그때 어땠는지 알 것 같지? 애는 죽어가지... 방법은 없고... 그걸 눈으로 지켜만 봐야하는...“
“오빠... 그러지마... 나도... 나도... 하루가 그렇게 됐을 때... 너무 힘들었어... 그러니까..“
“웃기고 있군... 니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그런 사람이 하루가 그렇게 가버리자 마자 이혼해? 넌 하루가 죽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날 버렸어... 난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하루는...“
대한은 잠시 격해진 감정을 다스렸다.
옛날 생각을 하니 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분노가 터져나왔다.
“넌... 하루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어... 하루가 아플 때 넌 뭐하고 있었지?“
“...”
“그래도 양심은 있나보지? 넌 하루가 죽어가고 있을 때 남자랑 놀아나고 있었어! 지 딸이 죽는지도 모르고... 침대에서 남자와 뒹굴었겠지... 그게 지금 니 남편이고... 내 말이 틀려?“
단영은 파르르 떨었다.
대한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를 입에 담아! 니가 사람이야! 양심이 있다면... 적어도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넌 그럴 수 없어...“
“미안해... 난 그저...“
“됐어. 더 이상...하루는 니 딸이 아니야... 내 딸이지... 너도... 니 딸이 죽는 슬픔을 격어봐... 그래야 날 이해할 수 있을 꺼야.“
그리고 대한은 의자를 돌려 앉았다.
“어떻게 보면 꼴 좋군... 하늘이 날 대신에 벌 주는 것 같아. 그땐 하늘이 정말 불공평 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군...“